
충만한 마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땅은 세상의 모든 축복을 한데 모은 듯 평화로웠다. 이종족들은 축복받은 땅 위에 그들의 삶을 지켜나갔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평화로운 생을 영위하였다. 허나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았던 평화가 깨어진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어두운 그림자를 이끌고 나타난 마왕의 강대한 힘 앞에서 평화를 지키기란 불가능과도 같았다. 인간들의 발악과 저항은 허약한 벌레의 버둥질과 다름이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가는 세상을 되찾고자하는 그들의 바람은 덧없이 꺼질 앞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마왕을 봉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용맹한 일곱 씨족이 지니고 있었으니, 신성한 보석이 지닌 힘 앞에서는 마왕이라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많은 희생을 치룬 끝에 일곱 씨족은 결국 마왕을 봉인할 수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먹구름이 갈라졌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평화가 돌아오고 있음을 예견하는 빛이었다.
길었던 전쟁을 종결시킨 일곱 씨족은 앞으로의 위험까지도 대비할 수 있기를 소원했다. 하여 그들은 저들 중 가장 용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였으니, 그들이 바로 베르샤우어와 네레우스 형제였다. 형 베르샤우어가 동생 네레우스에게 보석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하자 다른 가문들도 네레우스 앞에 머리를 숙였다.
"네레우스여. 신성한 보석의 주인이 되어 나라를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하면 저희들 역시 대대로 당신의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네레우스는 일곱 씨족의 신성한 보석과 충성의 맹약을 짊어지고 왕좌에 올랐다. 네레우스 왕은 마왕의 봉인에 큰 공헌을 한 일곱 씨족에게 작위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모아 폐허가 되었던 세상 위에 새롭게 나라를 세워나갔다. 13번째 달의 1일, 마왕을 봉인함과 동시에 새로운 나라를 선언한 그 날을 그들은 건국기념일로 삼았다. 네레우스는 나라의 평화를 약속했다. 나라의 건국을 기념하는 성대한 축제는 이를 알리는 하나의 서막과도 같았다.
- 이상 『일곱 씨족과 위대한 맹약』에서 발췌-
일곱 씨족의 여덟 시조는 일곱 보석의 힘을 한데 모아 마왕을 봉인했다. 이 봉인이 흐트러지는 날 마왕은 다시 세상에 강림하게 될 것이다. 초대 네레우스 왕은 모인 일곱 보석이 결코 떨어질 수 없도록 왕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것을 항상 착용하고 다녔으나, 시간이 흐르며 보안을 이유로 왕관은 왕성 깊숙한 곳에 보관되었다. 이제는 건국 기념일의 개회식 정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귀한 물건이 된 것이다.
왕관은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지하에서 천천히 녹슬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