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로 500년의 안온한 시간이 지났다. 500년간의 평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고통, 보석과 맹약을 잊게 만들었다. 위대한 맹약이 핏줄을 포장하기 위한 이야깃거리 취급을 받는 데까지는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과거의 맹약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왕족과 위훈가문 마저도 그러했다. 평화에 물든 왕가는 점점 게으르고 무능해져갔다.
네레우스력 516년, 당시 제 1귀족가문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베르샤우어 가문이 사건을 일으켰다. 가주는 과거의 맹약을 깨고 왕관에 손을 대었다. 보물로 내려오던 왕관을 훼손한 뒤 그것을 만민에게 내보여 지금의 왕가가 정통성을 잃었음을 증명하고 방계라는 이유를 통해 새 왕족이 될 심산이었다. 그러나 일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가주가 봉인을 훼손한 순간, 왕관이 일곱 조각으로 갈라지며 그 틈사이로 마왕이 등장했다. 마왕은 순식간에 가주를 삼켜버렸다. 검은 구름이 왕성을 에워싸고 하늘에는 마왕의 문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공포에 떨었다.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겠다는 듯 왕족의 머리가 성문에 내걸렸다. 둘째 왕자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만약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이 참극에서 그 어린 왕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을 터였다. 사실상의 몰살이었다.
마왕은 나라 곳곳,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가장 위험하다 불리는 곳들에 일곱 보석을 각각 버려두었다. 왕국은 완전히 암흑기를 맞이했다. 희망은 없는 것 같았다.
... ...
그렇게 5년이 흘러 521년이 되었다. 왕국에 드리운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물 밑에서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둘째 왕자는 살아있었다. 왕자는 충직한 기사와 함께 나라를 도울 사람들을 모았다. 왕자와 스물 두 명의 사람들은 집단의 이름을 장미십자단이라 명명했다. 장미십자단은 보석들이 버려진 곳, 온갖 위험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가까스로 보석을 탈환하는데에 성공했다. 521년의 13월, 5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왕자와 장미십자단은 새로이 네레우스의 맹약을 맺고 마왕을 다시 봉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들은 보석의 힘을 모아 마왕을 한데 봉인하는 대신, 보석의 힘으로 마왕을 일곱조각내어 각각의 보석에 봉인하였다. 이제 보석들은 한데 모일 수 없게 되었다.
보석은 여정에 참여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지킬 가문에게 나누어 보관케 하였다. 제 7가문 하텔도르프에 자수정을, 제 5가문 샬마르크에 사파이어를, 제 4가문 도블링에 에메랄드를, 제 3가문 슈트라세에 오팔을, 제 2가문 크로슈타트에 토파즈를, 제 1가문 노이플라츠에게 루비를. 마지막 다이아몬드는 왕가에서 맡았다. 비록 보석을 직접 수호하는 가문이 아닐지라도 그들 모두가 위훈가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았다. 각 가문은 가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보석을 지켜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망가지고 파괴된 나라를 복구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네레우스에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